비즈니스

[전문가의 시선] 글로벌 에너지 패권 전쟁의 향배는?

2024.04.15

탄소중립이 인류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의제가 된 이후 전 세계 각국은 탄소를 저감하려는 다양한 친환경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재정을 투여해 정책적으로 자국의 친환경 저탄소 산업과 기업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탄소중립 추세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탄소중립에 가장 힘을 쓰던 유럽조차도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실제로, 최근 독일은 수소로 전환이 가능한 10GW 규모의 천연가스 발전소를 신규로 건설하기로 했고, 영국은 내연기관 퇴출을 5년 연기하기로 했으며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은 원전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유럽연합 집행위는 ESG(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를 2년간 연기하기로 했는데, 기업들의 비용 인상이 그 이유였다.

미국, 2050 탄소 저감 로드맵 실현 가능한가?

미국 트럼프의 대선 출사표인 Agenda 47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정책은 ‘미국 국민에게 가장 저렴한 전력과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내의 원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통해 중국에게 빼앗긴 에너지산업 및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돌리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인플레이션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이야기다. 미국 Annual Energy Outlook 2023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해 2050년까지의 탄소 저감 로드맵을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가 주장하는 IRA(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성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050년 미국은 현재 절반 수준의 탄소 저감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2050년이 되어도 천연가스 발전은 에너지믹스의 50%를 담당하고, 다량 생산된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창출할 계획이다.

▲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22년부터 2050년까지 15 TCF 증가 (사진출처: Annual Energy Outlook 2023 –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EIA))

최근에는 그간의 탄소중립 계획들이 삐걱거리고 있다. 미국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ESG 공시 의무에서 Scope3를 모두 배제했고, Scope1과 Scope2도 기준을 하향해 기업의 부담을 경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의 3대 자산운용사인 Blackrock, Vanguard, State Street도 ESG의 불공정 투자 행위로 인해 의회 조사를 받고 있고, 몇몇 주에서는 소송에 휘말린 실정이다.

에너지 지형 변화에 수혜국은 중국과 인도

탄소중립의 핵심 산업인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자동차는 중국이 이미 압도적 물량을 앞세워 가격경쟁에서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에너지는 열역학 법칙에 따라 생산성 향상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사업은 결국 치킨 게임의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유럽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중국산 저가 태양광 패널을 수입해서 러-우 전쟁 이후 끊긴 PNG(Pipeline Natural Gas: 배관 천연가스)를 대체하여 에너지를 공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의 탄소중립 정책은 결국 중국산 태양광 패널, 배터리, 히트펌프 등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중국의 과잉생산을 통한 주도권을 대체할 국가가 보이지 않으니 전 세계 모든 친환경 저탄소 밸류체인이 중국에 귀속되는 형국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로 인해 이제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에 원유와 천연가스를 팔 수 없기 때문에 저렴한 에너지 덤핑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지형 변화에서 가장 혜택을 보는 국가는 결국 중국과 인도 등의 나라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낮은 에너지 비용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미국의 무역 압박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세계 모든 나라가 합심해 탄소 저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예상보다 험난할 수 있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의 실상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숨 가쁜 경쟁은 결국 자국 중심주의로 빠지고 있다.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세계무역기구) 체제하에서 자유무역이 절대 선이던 시절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자국 산업화를 위한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자국산 제조업이 없어 마스크 하나 화장지 하나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던 경험은 미국과 유럽의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이로써 해외에 진출한 자국 기업을 돌아오게 하는 제조업 부활 정책이 시작됐다.

한편으로, 탄소중립도 사실 비교우위에 기초한 무역의 선함이 아니라 탄소가격으로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세워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유치하려는 단순한 경제적 논리일 뿐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명분에 숨은 에너지 패권 전쟁과 자국의 경제적 이해득실의 셈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니 감당이 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의 자국 산업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한국은 원유나 천연가스 한 방울 나지 않지만 글로벌 에너지 패권에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에너지 자원 개발을 통하여 에너지 메이저 기업으로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에너지 공급에 일조하고 있다. 수입한 에너지원을 재가공하여 수출하고,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통하여 제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전통 제조업뿐 아니라 세계적 흐름에서 친환경 산업도 국산 기술로 자국 기업들의 손으로 쟁취하고, 미래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은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 업체들과 피를 말리는 전략적 싸움을 펼치는 전쟁터다. 이 전쟁 같은 경쟁에서 승리하고 자국 산업화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결국 마지막까지 에너지 패권을 쟁취하는 국가가 경제적 무역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