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천에서 메라우케까지 편도 23시간, 팜유의 모든 것 – 1편

2024.06.11

찾아갈 결심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김기자의 볼멘소리가 엄살이 아니었음을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설 연휴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2월 중순, D일보 산업부 팀장으로부터 창간 104주년 기획 특집기사를 준비하는 편집국의 의욕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해외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활약상을 보도하는 연재기사를 구상 중인데 해외 사업장 중에 추천할 만한 곳이 없냐는 문의를 받았다. 나는 조직도를 열어 우리의 해외 사업장 및 법인들을 리스트업 하기 시작했다.


‘미얀마, 우크라이나는 리스크가 있으니 어렵고…인니 팜농장 한번 밀어볼까?’


그렇게 제안했던 PT.BIA가 정말로 채택되어 르포 취재를 떠나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생각보다 크다

인천공항에서 약 7시간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의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문을 나서자 비가 방금 그친 듯 습하고 더운 공기가 훅 다가왔다. 해가 진 저녁 시간이었지만 덥고 습한 장마철 날씨 느낌이었다. PT.BIA가 있는 파푸아 섬으로 가는 스케줄은 야간비행편만 있어 다음날 밤 파푸아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PT.BIA가 위치한 메라우케(Merauke)까지는 자카르타에서도 직항편이 없다. 우리는 파푸아주의 주도인 자야푸라(Jayapura)에서 내려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메라우케의 모파(Mopah)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9시간의 국내선 비행을 마친 뒤 브런치를 먹고 바로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마지막 6시간이 넘는 육로이동이 남아있었다.

*편도 23시간의 위엄. 사실상 자카르타를 거쳐서 제3국으로 가는 셈이다. 약 1만7천5백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의 영토는 경도상 서쪽으로 미얀마(GMT+7)에서 동쪽으로 일본(GMT+9)까지 걸쳐 있어 동서 2시간의 시차가 있다. 인구는 약 2억8천만명으로 인도,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4위를 자랑하는 인구 대국이다.

*농장 개발 초기 육로이동만 12시간 걸리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달 홍수로 인해 도로 곳곳이 유실되어 있었다. 땅위에서 마치 배를 타듯이 우리는 웨이브를 탔고 꼬리뼈의 감각은 점점 사라져갔다. 나름 양호한 포장도로가 완성된 배경에는 수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파푸아 방문이 계기였다고 한다.

*길에서 마주친 현지인들이 직접 사냥한 짐승을 팔고 있는 모습. 이슬람교의 자바인들이 주류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도네시아지만 파푸아 섬은 인종(파푸아족), 종교(기독교), 언어(토착어)가 이질적이다. 천연자원(금, 팜 등)이 풍부하고 군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지역이기에 중앙정부도 포용정책을 펼치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약 5시간의 출렁임 끝에 다다른 팜농장 입구. 도로는 어느새 적갈색 비포장 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농장 입구에서 본관까지 차로 약 1시간은 더 가야한다. PT.BIA는 동서로 길게 늘인 나비모양으로 총3개(A, B, C)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면적은 서울시의 60%에 달한다.

*농장 입구에서 팔뚝 만한 크기의 도마뱀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김기자에게 출발 전부터 ESG관련해서는 업계 최고라고 호언장담을 했기에 기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 주장하는 오랑우탄 서식지 파괴 문제는 PT.BIA 해당사항이 없다. 파푸아 섬에는 원래부터 오랑우탄이 살지 않는다. 한편 파푸아 섬은 조류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PT.BIA의 하루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차가 멈춰 섰고 PT.BIA 김원일 법인장을 비롯한 현지 직원들과 반갑게 첫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시점에서 정확하게 48시간이 흘러있었다. 우리는 화재 감시탑에서 농장을 내려다보며 법인장의 열정적인 브리핑을 경청했다.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팜농장의 모습에 압도될 틈도 없이 일타강사의 강의처럼 PT.BIA 직원들은 우리에게 여러 정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360도 모든 방향으로 팜나무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현재 팜나무들은 2012년 A구역부터 순차적으로 식재를 시작해서 8~12년 수령으로 자라났다. 팜나무의 수령은 약 25년이며 식재 후 3년차부터 열매가 열리고 7~12년차까지 최대 수확량을 보여준다. PT.BIA 역시 최대 수확량 시기에 본격 진입함에 따라 상당기간 높은 생산성이 기대된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의 PT.BIA 김원일 법인장. 사진 잘 나오게 가만히 있어 달라고 당부했지만 그는 김기자에게 열정적으로 팜농장을 설명하기 바빴다.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매일 아침 5시 30분에 농장 직원들의 간식을 차에 가득 챙겨서 현장으로 나간다고 한다.

화재 감시탑에서 내려와 본격적으로 팜나무 곁으로 가봤다. 나무 사이로 들어가니 말 그대로 우거진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미 10년 이상 자란 팜나무는 강렬한 적도의 햇빛을 모두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팜열매는 동시에 8~10개의 열매 다발이 한 나무에 열린다. 열매가 열리고 약 6개월이 지나면 최적의 수확기가 된다. 산술적으로 1년에 약 18~20개의 열매 다발을 수확할 수 있다. 열매 다발 한 개는 15~30kg까지 무게가 나가며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열매 낱알은 큰 대추 크기로 표면이 매끈하고 과육은 아주 단단하다.

*무더운 날씨 탓에 비교적 서늘한 오전 6시에 농장의 일과는 시작된다. 가지를 쳐내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열매 다발을 끌처럼 생긴 도구를 사용해 수확한다. 농장 직원은 하루에 인당 80~100개 정도의 열매를 수확하며 수확한 열매는 24시간 이내에 착유해야 신선한 팜유를 생산할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팜농장을 간단히 답사하고 숙소로 이동하려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삼겹살 파티를 준비해 준 현지 직원들.. 다같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에서 잠이 드는데..

To be continued

인도네시아도 여느 동남아 국가들과 유사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17세기부터 약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1942년부터 독립 직전인 1945년까지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후 4년 5개월에 걸친 독립전쟁 끝에 1949년 마침내 독립을 이뤘다. 두 차례의 장기집권과 정치적 과도기를 지나 마침내 인도네시아 최초의 직선제 정권 교체를 이루며, 군 경력이 없는 최초의 민간인 출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바로 현직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다.

*유명한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으로는 히오바니 판 브롱크호르스트(Giovanni Van Bronckhorst) 가 있다. 아스날, FC바르셀로나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2010월드컵 준우승,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2000년대 막강 오렌지군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그 외에도 전설적인 공격수 로빈 판 페르시 역시 외고조모가 인도네시아인으로 알려져 있다. 갑자기 축구얘기로 넘어가서 당황스럽겠지만 여러분은 인도네시아에 네덜란드 식민지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파푸아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천연자원이 풍부했던 파푸아 지역은 1962년까지 네덜란드령 뉴기니로 남아있었다. 네덜란드는 서뉴기니(서파푸아)를 독립시키려 했지만 인도네시아의 반발로 현지 원로들을 통한 간접투표를 통해 인도네시아령으로 편입되었다.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자바인들을 대거 이주시키는 등 동화정책을 펼쳤으나 2000년대 초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분쟁이 심화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