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보이는 한 컷 만화는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이정문 화백이 그린 ‘서기 2000년 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작품인데요. 만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에서 아픈 곳을 치료받고, 더러운 곳을 청소하는 로봇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것들은 꿈만 같은 일이고 먼 미래의 일 같았지만, 이제는 실현이 되었거나 머지않은 미래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죠.
이와 같이 59년 전 우리가 꿈꿨던 미래의 모습을 실물 그리고 스토리로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이벤트가 있습니다. 바로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2024와 세계 각국의 리더가 모여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다보스포럼인데요. 매년 초 열리는 두 이벤트를 통해 올해의 주요 이슈와 미래를 내다보겠습니다.
AI는 일상으로 침투하고, 세계는 서로를 신뢰해야 할 때
올해 CES2024의 메인 슬로건은 ‘All Together, All On’이었습니다. ‘모두를 위한, 모든 기술의 활성화’라는 뜻으로 인공지능(AI)의 일상화를 예견하고 있죠. 실제로, CES를 주관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 회장 게리 샤피로는 개회사를 통해 “AI 기술이 모빌리티, 인프라, 지속가능성, 스마트홈 등 모든 산업 영역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라며 “AI 기반 제품들이 높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반면, 다보스포럼에서는 메인 슬로건 ‘Rebuliding Trust’를 내세우며, 동시다발적인 안보 위기 속, 수많은 분열과 갈등 상황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소리 높였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와 관련해 전 세계가 협력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협력에 앞서 서로 신뢰를 재건해 함께 맞서 행동할 힘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와 같은 의견 속에 내일은 어떻게 달라지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Of the AI, By the AI, For the AI 모든 곳에 AI가 있다
올해 CES2024의 기조연설(Keynote Addresses)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바로, 비(非) 전자 산업군인 뷰티 기업 로레알(Loreal)의 CEO 니콜라 이에로니무스(Nicolas Hieronimus)가 나섰기 때문인데요.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에 뷰티 기업이 최전방에 나선다는 게 매우 의아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로레알 CEO가 ‘화장품의 AI 혁신’이라는 주제로 AI를 접목한 뷰티 서비스 ‘뷰티 지니어스(Beauty Genius)’를 공개하며 이 모든 의문이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비(非) 전자 산업군까지 AI를 활용하며, IT로 뛰어든 오늘날의 상황. 과연 다른 기업들은 AI를 통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가장 많이 머무르는 집의 변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TV나 모바일을 허브로 가전 기기를 연결해 손쉽게 조작하는 것은 일찍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전 기기가 지능까지 가진다면? 그 모습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식재료가 드나드는 순간을 냉장고의 내부 카메라로 촬영해 식재료 리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식품을 넣은 날짜도 기록돼 보관 기한을 설정하면 상하기 전 미리 알려주는 AI 냉장고를 선보였습니다.
LG전자는 다양한 센서로 사용자의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감지해 필요한 것을 먼저 알아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능을 담은 일명 AI 집사를 내놓았습니다. 심박수·호흡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맞춰 온·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해 줄 뿐만 아니라, 명령어를 이해하고 반려견에게 간식을 주는 등 인간이 해야 할 행동을 대신해 주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동 수단에도 AI가 만드는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AI가 중요해지면서 모빌리티 기업들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자(SDV)’를 내놓았는데요.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첨단 SW와 생성형 AI 기반의 네 가지 감성을 지닌 MBUX 가상 어시스턴트를 선보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마르쿠스 쉐퍼 벤츠 최고기술책임자는 “AI 발전을 통해 미래의 벤츠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전자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자동차는 물론 다른 영역에서도 고객의 삶을 향상시키고 보완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폭스바겐 역시 IDA 음성 어시스턴트에 Chat GPT를 통합한 차량을 최초 공개하며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현대자동차그룹은 ‘휴대폰을 만들듯이 차를 만든다’는 목표 아래 새 자동차를 사지 않아도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의 성능과 기능 등을 최신 자동차처럼 발전시키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늘어나는 수명과 팬데믹 이후 인류의 최대 관심사인 헬스케어 분야도 AI 기술 도입에 적극적인데요. 건강 상태 체크를 넘어 현재 기분 상태도 파악해 운동, 명상 등 솔루션을 제공하는가 하면, 사용자의 걸음의 질을 분석해 더 많은 칼로리 소모와 관절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자세로 제안하는 솔루션까지 나왔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간병, 물류 운송, 뷰티, 수면 등 의료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AI가 확산되고 있죠.
즉, AI 기술이 고도화되고 모든 영역에 적용되면서 기기 자체에 AI가 장착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온디바이스 AI 시대, 우리는 빅블러와 인간 안보를 준비해야
이처럼 AI 기술의 발전이 산업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면서 기술의 발전 속도를 증가시키는 만큼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산업 간 ‘빅블러(Big Blur)’가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일본의 소니(SONY)와 혼다(HONDA)도 손을 잡았습니다. 특히, 전기자동차의 경우 전통 자동차 기술의 영역과 전자제품의 영역이 혼재되어 있는 만큼 전기자동차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자동차 기술뿐 아니라 전자제품도 빠른 시간 내 잘 만들어야 하기에 산업 간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또한, 빅블러만큼 인간 안보에 대한 준비도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전의 두 번째 관문인 뉴햄프셔주(州) 예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소속인 조 바이든 대통령을 사칭해 해당 경선에 불참할 것을 권하는 딥페이크 음성이 유포돼 주 정부가 수사에 착수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관영 중국국제텔레비전(CGTN) 방송에서 한 투자 플랫폼을 홍보하는 영상인데요. 영상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기는 싱가포르 정부가 승인한 플랫폼이라며 “일론 머스크가 설계한 혁신적 투자 플랫폼”이라고 거듭 칭찬한 것이죠.
이는 사실 리셴룽 총리와 CGTN의 인터뷰 방송 내용을 딥페이크 기술로 조작한 영상으로 AI가 경제에도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화된 것으로 우리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이들이 만들어낸 것을 끊임없이 분석해야 하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레이더 시선에서 에너지 문제도 빼놓을 수 없어
AI가 발전될수록 보급률은 상승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전력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에너지 혁신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실제로, Chat GPT 같은 AI 서비스는 인터넷의 공개 정보, 다른 기업이나 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받은 정보, 프로그래머가 입력한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데요. 한 연구에 따르면 Chat GPT로 검색했을 경우 포털사이트에서 동일 내용을 찾을 때보다 최소 15배 이상의 전력을 소비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AI 기술 발달과 서비스 확대로 2050년쯤에는 지금보다 전력 소비량이 100배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죠.
이와 같은 문제를 직시한 글로벌 리더들은 AI의 발전이 불러올 에너지 위기와 더불어 기후변화 대응책, 에너지 안보 강화 등을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신(新)원자력’을 주제로 한 비공개 토론을 진행했는데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보스포럼에서 원전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된 것은 1971년 이후 처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원전은 그동안 일명 ‘트러블 메이커’로 취급을 받아왔지만,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유럽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것에 이어 AI 시대에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전력 부족’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이미 원자력 발전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데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기가 중요해졌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화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오픈AI의 샘 알트먼 CEO는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에너지 분야에서 획기적 돌파구 없이는 AI 시대를 실현할 방법이 없다”며 AI 시대의 에너지 돌파구로 ‘핵융합 발전’을 꼽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리더들이 AI의 발전으로 인한 에너지 사용 증가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이유는 지구 평균 온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가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는데요.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온도는 13.6도로 추산된 것에 비해 지난해는 이보다 1.45도 높았죠. 더 큰 문제는 평균온도를 상승시킨 엘니뇨 현상이 계속되면서 올해도 무더위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이 펴낸 ‘전 세계 위험 보고서 2024’에서도 ‘극한 기상’이 올해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파괴력을 지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AI의 발전이 기후 위기로 가는 촉진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올해 CES2024와 다보스포럼에서는 ‘인류는 AI를 피해 갈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가게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딥페이크 등 부작용도 존재하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AI가 도와주면서 확실히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요. 하지만, AI 발전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간과한다면 우리는 기후변화, 식량난, 자연재해 등 상상하지 못한 위기를 맞을 수 있죠. 따라서, 우리는 지금 찬란한 초록빛 시대가 아닌 아슬아슬한 경계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AI의 발전과 기후 위기의 대응을 같이 생각하며 나아갈 때입니다.